아, 또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하다, 내시야 한구석을 차지하는 인영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것은 늘 두통과 함께 찾아왔다. 그리고 그것이 보일 때면, 나는 습관처럼 신경질적으로 목덜미를 긁었다. 지끈거리는 두통을 억지로 참아내며, 제 앞을 스쳐 지나가는 인영을 애써 무시하며 총알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 이 지겨운 힘겨루기도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고 있었다. 코끝으로 희미하게 느껴지는 폭약 냄새에 내 뒤에 서서 나를 엄호하고 있던 녀석들을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내 고갯짓에 녀석들이 건물에서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몸을 돌렸다.
건물에서 정확히 500m 떨어졌을 때, 등 뒤에서 폭음 소리와 함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곧이어 거리에는 비명과 신음이 가득 찼다. 방금까지 이 자리에서 위용을 자랑하던 건물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건물이었던 파편들은 사상자들과 함께 나뒹굴고 있었다. 싸늘한 시선으로 폐허가 된 거리를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이 순간에도 환락의 도시까지 비명이 들릴 리 없을 테니까.
참 웃기는 일이지.
소음과 함께 총알이 다시 한번 제 귀를 스치며 이명을 남겼다. 참다못해 손끝으로 주머니를 더듬어 익숙하게 알약을 꺼내 입에 물고 삼켰다. 지끈거리던 두통이 한층 가라앉았다. 아까보다 가벼운 움직임으로 피하면서 입을 열었다.
"제대로 엄호해."
내 말에 그제야 움직이는 녀석들을 보고 혀를 찼다. 이 폐허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내 앞을 가로막는 방해물들의 마지막을 확인하고, 피와 비명이 흥건한 거리를 등을 지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질척이는 피 웅덩이를 지날 때마다 발걸음이 점차 무거워졌다. 죄책감이 나를 옭아매기 시작하고, 붉은 기색 하나 없을 제 손이 붉게 물들어 가는 것 같았다.
내 발걸음이 종착지에 다다르자, 한 남자가 다가와 고개를 조아리며 검은 가방을 건넸다. 확인할 것도 없이 내가 찾던 물건이라는 확신에 대충 내 뒤의 녀석들에게 고개를 까닥이며 남자에게서 등을 돌렸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돈을 건네받은 남자의 히죽거림이 매스꺼웠다. 나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카이토"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칠흑같이 검은 복장을 한 채로 아오코가 서 있었다.
"…언제 왔어?"
"방금."
폐허 속에서 아오코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이곳에 아오코가 서 있는 것이 싫어,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 불쾌한 장소에서 빠져나온 후에야, 아오코는 입을 열었다.
"괜찮아?"
아까 매스꺼워 입을 틀어막았던 행동에서 이상함을 느꼈는지, 아오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에 손을 뻗었다. 차가운 냉기가 느껴지는 손이 제 얼굴에 닿아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응, 아오코"
내 말에 아오코가 다행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보았던 것처럼 새하얀 미소였다. 비명과 신음, 그리고 피로 얼룩진 이 폐허와 동떨어진 미소를. 그 미소의 의미를 너무나도 잘 아는 자신의 모습에 구역질이 나는 것을 억지로 삼켜냈다. 나에게서 느껴지는 이질감을 느꼈는지, 의아하게 올려다보는 아오코에게 전과 같은 미소를 지어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돌아가자."
돌아가는 길, 지금까지 애써 무시하던 인영이 폐허 속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아직은 어린, 금발 머리의 소년의 형상을 한 그것은. 언제나 그랬듯이, 나를 향해 애처롭게 손을 뻗었지만, 절대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 모습에 헛웃음을 지으며 소년에게 입 모양으로 말했다.
역시 넌 진짜가 아니야. 사라져.
내 말에 소년의 얼굴이 흐릿해졌다. 언제나처럼 애처롭게 나를 향해 손을 뻗다 늘 그랬듯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내 기억의 마지막 모습을 한 채로.
"같이 왔네?"
"…뻔뻔하네. 그걸 원해서 아오코를 보냈잖아."
"반쯤은."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자리에서 의자를 빙글 돌리며 나를 쳐다보는 시선과 마주했다. 날카로운 청안이 나를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그 집요하게 파고들려는 시선에 내 속마음을 들킬 것 같아, 소파에 앉는 척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내 행동에 불만이 있는지 의자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고, 이윽고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내 옆에서 들려왔다.
"카이토"
"…신이치"
신이치는 한숨을 쉬며 내 옆에 앉아 셔츠를 들쳤다. 무방비하게 드러난 내 목덜미에 가득한 붉은 상처들로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상처에서 쓰라림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내 반응에 신이치는 상처에서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가더니, 익숙하게 서랍을 열어 연고를 들고 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카이토"
"…어."
"아직도 환영이 보여?"
"…어."
"그래…."
신이치는 더 말없이 내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었다. 신이치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느껴지는 서늘함이 나쁘지 않아 그대로 소파에 등을 기대로 눈을 감았다.
"신이치, 우리 괜찮은 걸까."
"아니. 하지만, 곧 그렇게 될 거야. …아니 돼."
굳은 결심을 내보이는 신이치의 얼굴을 다시금 쳐다보았다. 말을 할 듯 말 듯 입술을 달싹이다 입을 다물어 버리는 신이치의 행동에 손을 뻗어 신이치의 뺨을 감싸며 입을 열었다.
"무리하지 마."
"너야말로. 피곤해 보이는데, 잠깐 쉬었다 가."
피식 웃으며 신이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 말에 피로가 몰려드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며 그대로 눈을 감았다. 두통이 몰려왔다. 언제나 물어보고 싶었으나, 들을 수 없으리라 생각해 되삼키던 질문이 떠올랐다.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환영을 향해 입 모양으로 말했다.
하쿠바.
말해봐, 네가 원하던 유토피아엔 내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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