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잇쥬 2021. 1. 7.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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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추격하던 빌런이 건물로 숨어들었다. 제압하고 돌아갈 생각을 하면서 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층수를 오르면 오를수록 `폭발 주의`라 붙은 경고문들이 가득했다. 주위에는 인화성 물질들로 가득했다. 빌런은 일부러 이 건물로 도망쳤다는 것을 알아챘다.

 

 

자신의 개성과 상성이 최악인 이곳으로. 빌런의 개성은 몸을 변형시키는 것이었다. 몸 일부를 날카로운 칼처럼 만들어 공격했다. 바쿠고가 개성을 쓰지 못함을 확신하고 사정없이 칼날을 휘둘렀다. 바쿠고는 그 공격들을 피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 건물로 도망치던 놈이 웃는 게 찝찝하더니 다 이유가 있었네. 죽여 버릴 테다. 바쿠고는 무전으로 지원 요청을 했다. 아마, 곧 있으면 도착하겠지.

 

 

[히어로 데쿠 건물로 진입합니다.]

 

 

유에이를 졸업한 이후, 미도리야는 한층 성장했다. 평화의 상징인 올마이트가 죽은 이후로. 2세대 평화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이제는 몸집도 커져서, 자신이 위로 올려 봐야할 지경이었다. 그게 싫어서 그 이후로 모두와 연락을 끊었다. 가끔 동창회라는 구실로 연락이 왔지만, 일방적으로 무시했다. 피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었다.

 

 

미도리야를 보면 평화의 상징이었던 그가 생각이 났다.

무너져버린 평화의 상징. 평화의 시대의 종막과 동시에 빌런 연합의 시작을 알림을.

그 시작은 자신이었다. 그리고 바쿠고는 아직도 그 날의 일들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미도리야는 빌런에게 달려들면서 오른팔로 공격을 날렸다. 빌런은 미도리야의 기습 공격을 맞고 쓰러졌다. 미도리야의 공격이 유효타로 들어갔음이 분명한지, 빌런은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미도리야는 당황했지만, 입가에 여유가 있었다. 그래, 저 모습은 마치 올마이트 같았다.

 

 

잠시 넋을 잃을 뻔했지만, 빌런이 비틀거리면 다시 일어서자 정신이 들었다.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원하는 것이 있는 사람처럼.

 

 

“…네놈 목적이 뭐야.”

“빌런 연합의 재 시작! 새로운 평화의 상징을 없애는 것으로 우리의 시대는 다시 시작된다.”

“내가 아니었냐….”

 

 

빌런은 바쿠고의 말에 웃음으로 대답했다. 미도리야는 빌런의 말에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챘다. 바쿠고는 습관처럼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은 평화의 상징을 끌어내기 위한 미끼였다. 이건 마치 그때와 같아서, 화가 났다. 그 잠깐의 틈을 타, 빌런은 미도리야에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럽게 달려드는 빌런을 피해내고 제압했다.

 

 

“우리 빌런 연합의 시대가 온다!”

“…빨리 마무리 짓고 나가는 게 좋겠네.”

 

 

제압된 상태임에도 실실 웃으면서 소리치는 모습에 미도리야는 빌런을 제압한 채로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제압한 빌런을 끌고 건물을 끌고 나서려 했다. 그런데 무언가 꺼림칙했다.

 

 

바쿠고의 촉은 좋은 편에 속했다. …뭔가 이상해. 느낌이 안 좋아. 바쿠고는 건물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이드 킥에게 제압이 끝났다는 무전을 하기 위해 빌런에게서 잠시 시선을 뗐다. 그리고 무전기를 들어 올리는 그 잠깐의 찰나, 빌런은 품속에서 화약을 꺼냈다. 인화성 물질들이 가득한 이 건물에서. 그래, 이 건물과 함께 평화의 상징을 날려 버리기 위해.

 

 

“평화의 상징, 죽어!!”

 

 

바쿠고는 미도리야를 향해 달렸다. 순간 화약이 불이 붙으며, 인화성 물질과 접촉해 폭발했다.

 

 

미도리야는 웅성거리는 소음에 정신이 들었다. 눈앞이 흐릿했지만 곧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미도리야가 기억하는 것은 바쿠고가 자신에게 달려들었고, 그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낙하하면서 강하게 부딪혔는지 다리가 부러진 것 같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제야 미도리야는 자신의 몸이 피범벅임을 알 수 있었다. 이 피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이건 바쿠고의 피였다. 그제야 미도리야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신을 감싸 안았던 사람이. 미도리야는 기가 막혔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네가, 왜 나를 위해서? 너는 그럴 사람이 아닌데.

 

 

미도리야는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절뚝거리며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진 바쿠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미도리야는 바쿠고의 앞에서 멈칫했다. 온몸엔 화상과 낙하하면서 잘못 떨어진 바람에 철근이 바쿠고의 몸을 관통하고 있었다. 이건 치명상이다. 즉사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그 모습에 미도리야는 숨이 막혔다.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미도리야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어째서, 그런 거야?”

 

 

익숙한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몽롱하게 느껴졌던 정신이 서서히 돌아왔다. 흐릿했던 시야가 점차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멍청한 얼굴의 미도리야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내 몸을 관통한 철근이 보였다. 이정도면 어차피 늦었다. 온몸에서 감각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 폭발에 몸이 멀쩡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조금만 늦었으면 둘 다 건물에서 삼켜졌겠지. 점차 초점이 안 맞아가는 게 느껴졌다. 그 모습에 미도리야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바쿠고. 너만은 그러면 안되잖아… 이렇게 죽어버리면 안되잖아.!”

“네가, 죽으면 안되니까….”

“뭐?”

“…넌, 평화의 상징, 이잖아.”

 

 

바쿠고의 말에 미도리야는 말문이 막혔다. 네가 왜 그런 말을 해. 너는 죽으면 안돼. 너는! 올마이트를 죽인 너는, 너만은 이렇게 죽으면 안 된다고 미도리야는 줄곧 생각해왔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의 끝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머릿속이 백지장이 된 것 같았다.

 

 

미도리야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바쿠고는 그 모습에 웃음이 났다.

 

 

너는 그런 나를 위해서도 울어주는 구나.

 

 

“이즈쿠.”

 

 

미도리야는 자신을 부르는 바쿠고를 쳐다보았다. 바쿠고에게 이름으로 불린 것은 5년 만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완전 남처럼 살아왔으니까.

 

 

“미안했다. 너는 ―라.”

 

 

바쿠고의 말에 미도리야는 숨을 막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놓을 수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데, 어떤 마음으로 참아왔는데. 아직 못다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놓을 수 없는데. 나 아직 너에게 할 말이 있어. 다급하게 미도리야의 손이 바쿠고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바쿠고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웃으며 눈을 감았다. 그 모습에 미도리야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어디선가 빛이 들어와 눈을 간질여 자연스레 눈이 뜨였다. 바쿠고는 이상하게 몸이 가볍다고 느꼈다. 멍한 기분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얀 벽지의 천장, 익숙함에 고개를 돌렸다. 질서정연한 방. … 여긴 내 방이다.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자신은 치명상을 입었다. 그리고 내 앞엔 미도리야가 있었지. 꿈인가…, 그러기엔 난 죽었지. 꿈은 아닌 것 같은데.

 

 

바쿠고는 머리를 마구 헝클리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거울로 다가섰다. 거울 속 자신은 어렸다. 마치 이제 막 중학교를 졸업한 것 같은. 순간,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설마? 바쿠고는 방 안을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찾을 수 있었다. 반듯하게 정리, 정돈된 책상 위에는 유에이 합격 통지서가 펼쳐져 있었다.

 

 

“하…, 하하…”

 

 

이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과거로 돌아왔다고? 바쿠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통지서를 다시 내려놓고는 침대에 대자로 쓰러지든 누웠다. 말도 안돼. 과거로 돌아왔다고?

 

 

평화의 상징을 지키기 위해 나를 버렸다. 그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평화의 상징을 무너트린 자신이, 올마이트에게 속죄할 수 있는 방법이었는데. 그랬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그 끔찍한 과거를 다시 되풀이하라고?

 

 

바쿠고는 순간 울컥 치미는 감정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옆에 있던 베개를 집어 들고는 얼굴을 파묻었다. 어떻게 버텨왔는데!! 그 날의 죄책감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옥같이 보냈던가. 지옥 같던 나날들이 떠오르면서 억눌러왔던 감정들이 터져 나왔다. 참으려고 했지만 눈물이 세어 나왔다.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혹시나 누가 들을까, 바쿠고는 울음을 참았지만 차마, 참지 못한 흐느낌이 방안에 퍼졌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냈다. 울음을 다 토해내고 나니, 감정이 천천히 진정되었다.

 

 

거울을 슬쩍 보니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그 모습이 꼴사나워 보여, 옷소매로 눈가를 닦아냈다. 이미 발갛게 오른 눈가는 그리고 합격 통지서를 내려다보았다.

 

 

이전의 나라면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을 합격통지서를 손에 쥐었다. 처음 이 통지서를 받고 얼마나 흥분했던가. 그 당시 느꼈을 환희가 지금은 부질없게 느껴졌다. 통지서를 시작으로 많은 일이 일어났다. 유에이에 합격했다는 사실로 오만함에 들떠있던 내가, 혐오스러웠다. 어떤 일이 기다리는지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 통지서가 꾸겨졌다. 이번엔 다를까, 이 죄책감을 지워낼 수 있을까.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기 전에 앞서 전에 못했던 걸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바쿠고는 굿즈샵 앞에서 서성였다. 입구에서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들어가 버렸다….

 

 

굿즈샵 내부에는 올마이트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올마이트 굿즈가 한가득 있었다. 올마이트가 한가득… 바쿠고는 홀린 듯이 두 손 가득히 올마이트 브로마이드를 집어 장바구니에 담았다. 예전엔 굿즈샵에 가려고 할 때마다 문 앞에서 망할 데쿠놈을 만나거나, 남들의 시선으로 인해 매번 무산됐었다. 설마 이번에도 마주치겠어? 라는 생각으로 굿즈샵에 와버렸는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바구니 가득히 담긴 굿즈들을 계산대로 가져가려는 찰나, 한쪽으로 눈길이 갔다. 평화의 상징인, 올마이트가 환하게 웃고 있는 대형 브로마이드였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속 한구석이 아렸다.

 

 

바쿠고는 미동 없이 브로마이드를 응시하다가 결국 마음먹었다. 역시 저것도 사야겠다.

 

 

“앗, 카…캇쨩?!”

 

 

바쿠고는 순간 멈칫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안다. 망할 데쿠놈이다. 저 새끼가 올마이트에 미친놈이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입학 전날까지도 굿즈샵에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저 새끼랑 마주치기 싫어서 오늘 온 건데!

 

 

“캇쨩도 올마이트 굿즈 사러 온 거야?”

“……”

“매번 같이 굿즈샵에 가자고 할 때 거절하기에, 사러 올 줄 몰랐거든…”

“말 걸면 죽인다.”

“히익ㅡ!”

 

 

바쿠고는 미도리야를 무시하고 계산대로 향하려 했지만, 역시 미도리야가 말을 건넸다. 한껏 들떠있는 모습을 보니, 유에이 합격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소란스러운 건 질색이라 그냥 무시하려는데, 역시 시끄러웠다. 데쿠 놈한테 한소리를 내뱉으니 조용해졌다. 데쿠를 뒤로 하고 장바구니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그런데 스쳐 지나가면서 본 데쿠 놈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마음에 안 든다.

 

 

그때의 그 일들이 생각나니까. 오열하는 미도리야와 쓰러지는 올마이트가 보이는 것 같아서.

 

 

“야”

 

 

바쿠고는 결국 다시 미도리야에게 다가갔다. 미도리야는 바쿠고가 다시 다가올 줄을 몰랐는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하기야 나도 내가 다시 데쿠한테 말을 걸 줄 몰랐으니까.

 

 

“ㅡ캇쨩?”

“어디 가서 그딴 표정 짓지 마라. 등신 같으니까.”

“……”

“반에서도 또 그런 표정 지으면 죽인다.”

“어?”

 

 

바쿠고는 얼빠진 표정을 짓는 미도리야를 뒤로 하고 계산대로 향했다. 그래도 할말을 하니 속이 편해졌다. 아까 신경쓰이던 대형 브로마이드도 챙겼겠다. 두 손은 무거웠지만,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즈쿠, 정말 괜찮니?”

“괜찮아…”

 

 

실기 시험 후 일주일이 지났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다. 필기는 아슬아슬하게 합격 라인을 넘었는데, 실기에서 망했다. 입시 이후에 올마이트와 연락이 되지 않는 거로 봐서 나한테 실망한 게 분명해….

 

 

“미안해요. 올마이트…”

“이, 이즈쿠!! 통지서 와있었어!!”

 

 

합격해버렸다는 사실에 너무 들뜬 나머지 굿즈샵에 왔다. 오늘은 올마이트의 신작 브로마이드가 나오는 날인걸!! 그리고 이상하게도 굿즈샵에서 캇쨩을 봤다. 캇쨩은 올마이트 브로마이드를 보고 있었다.

 

 

…여전히 올마이트를 좋아하고 있구나.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지만, 굿즈샵에 가자고 하면 늘 화를 냈는걸. 분명히 여기서 말 걸면 캇쨩 성격에 가만히 안 있겠지. 그래서 모른 척 지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의외로 금방 보고 지나칠 것으로 생각했던 캇쨩은 미동도 없이 브로마이드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씁쓸해 보였다.

 

 

“캇쨩도 올마이트 굿즈 사러 온 거야?”

“…….”

 

 

미도리야는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바쿠고에게 말을 건넸다. 분명히 무시하거나 바로 소리를 지를 거로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바쿠고의 반응은 잠잠했다. 슬쩍 눈치를 보니 바쿠고의 표정이 평온해 보였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미도리야는 잠잠한 반응에 의아함과 동시에 호기심에 다시 말을 걸었다.

 

 

“매번 같이 굿즈샵에 가자고 할 때 거절하기에, 사러 올줄 몰랐거든…“

“말 걸면 죽인다.”

“히익ㅡ!”

 

 

미도리야는 아까의 바쿠고를 잘못 보고 착각한 것으로 생각할 뻔했다. 왜냐하면 말투는 평소와 같았으니까, 그런데도 느낌이 달랐다. 말투는 살벌했지만, 말투 자체에서 분노가 느껴지지 않았다. 캇쨩이 평소와 달랐다. 아까의 씁쓸한 모습을 잘못 본 게 아니었나, 캇쨩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야”

“ㅡ캇쨩?”

 

 

계산대로 먼저 간 줄 알았던 캇쨩이 다시 돌아와 말을 걸었다. 아, 또 눈 마주쳤다. 아깐 미처 못 봤는데 눈이 마주치자 미세하게 동공이 흔들림을 느꼈다. 잘못 본 건가 싶어, 다시 눈을 마주치려 하자 캇쨩은 고개를 돌린 후였다. 마치 시선을 피한 것만 같았다.

 

 

“어디 가서 그딴 표정 짓지 마라. 등신 같으니까.”

“……?”

“반에서도 또 그런 표정 보이면 죽인다.”

“……어?”

 

 

미도리야는 바쿠고의 행동에 솔직히 놀랐다. 미도리야를 질색하는 바쿠고와 이렇게 얌전한 대화를 할 줄은 몰랐으니까. 그리고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미도리야는 바쿠고의 말에서 의문을 느꼈다.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반에서 또 그런 표정을 보이면 죽는다니. 캇쨩, 이건 마치 내 합격 소식을 알고 있는 사람 같잖아….

나도 어제 늦게 알게 된 합격 소식을, 캇쨩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바쿠고는 유에이에 두 번째 입학을 했다. 과거에 겪었기 때문에 기대감이라거나, 흥분감은 없었다.다만, 입학보다도 그 시절의 올마이트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름 큰 기회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데쿠 놈한테 정신이 팔려, 올마이트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었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데쿠가 나한테 뭐라도 된 것 같은데, 기분 나쁘네.

반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예전에도 이 자리에 앉았던 기억이 있는데.

 

 

“어이! 책상에 발 걸치지 말라고!”

“하”

“유에이 선배들과 책상을 제작하신 분들께 죄송스럽지 않냐!”

“죄송스럽진 않고, 너 시끄럽다고.”

“그렇다면 미안하다. 나는 이이다 텐야다.”

“…바쿠고 카츠키”

 

 

더는 발끈해봤자 소란스러워질 게 뻔해서 그냥 이이다 놈의 말에 어울려줬다. 마침 데쿠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시선이 놈한테로 집중됐다. 실기 시험의 의도니 어쩌니 하는 소리가 소란스러웠다. 시끄럽긴 매한가지라고. 저 녀석들 언제까지 떠들 셈이지. 이때쯤 한소리 들었던 것 같은데.

 

 

“친구 놀이가 하고 싶으면 딴 데로 가라.”

 

 

마침 아이자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놈들 저렇게 까일 줄 알았다. 아이자와한테 한소리 들더니 몇몇 놈들은 주눅이 든 게 보였다. 아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체육복이 어디 있더라.

 

 

“갑작스럽겠지만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 나와라.”

 

 

아이자와의 말에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으로 이동했다.

 

 

“개성 파악 테스트를 할 거다.”

“바쿠고, 중학교 때 소프트볼 던지기 몇 m 였지?”

“67m 정도였나.”

 

 

중학교 때라, 아무래도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럼 개성을 써서 해봐라. 맘껏 해봐.”

 

 

바라던 바다. 지금의 나는 이전의 나보다 신체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하지만 신체능력이 떨어지는 대신 개성에 대한 컨트롤만큼은 자신 있었다. 어차피 돌아온 이상, 현재의 내가 개성을 얼마나 컨트롤 할 수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근육을 살짝 풀었다. 역시 뭐든지 구호가 중요하다. 힘이 들어가거든.

 

“죽어라!!!”

“무슨?!!”

“바쿠고, 1.9km”

 

 

뭔가 상쾌하네. 바쿠고는 어깨를 풀었다. 옛날에 비하면 높은 성적이다. 근래 훈련한 효과가 나오는 거 같았다. 바쿠고는 마음속으로 더 훈련 강도를 높여야겠다고 다짐했다.

 

 

“1.9km라니 말도 안 돼.”

“재밌겠다!”

“재밌겠다라…히어로가 되기 위해 3년간 그런 마음가짐으로 보낼 셈인 거냐?”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예전에도 저런 놈이 있었던 거 같은데. 예전엔 저런 말 들어봤자 신경도 안 쓰였을 나였겠지만. 히어로가 되고 나서는 저런 놈들만 보면 화가 났다. 저런 정신으로도 히어로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저런 마인드 때문에 히어로 활동할 때 위기 상황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화가 난다고!

 

 

“한심한 새끼.”

“뭐? 말이 심하잖아, 바쿠고!“

“재미로 히어로가 될 생각이라면 때려치워! 남한테 피해주지 말고. 아니면 지금 바로 때려치우게 아작 내줄까?!”

“진정해라, 바쿠고.”

 

 

분위기가 험악해지려는 찰나, 아이자와가 중재했다. 바쿠고는 아이자와의 중재에 순간 폭발할 뻔만 기분을 가라앉혔다. 솔직히 저기서 더 멍청한 대답을 들었더라면 아마 개성을 써서 저놈을 폭파했을 거다. 마침 중재한 아이자와에게 조금의 고마움을 느꼈다.

 

 

“바쿠고의 말대로 히어로는 장난이 아니다. 히어로는 불합리한 상황에 놓여있다. 그래서 전체 성적이 최하위인 자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해 제적 처분한다.”

 

 

아이자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놈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심각함을 느낀 게 분명했다. 제1종목부터 3종목까지 금방 지나갔다. 다들 전력으로 임하고 있지만,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데쿠였다. 데쿠 놈이 최하위였으니까. 과거에서 바쿠고는 미도리야에게 개성에 대하여 들었다. 그때 아마 원포올(One For All)이라는 개성, 데쿠 놈한테 듣기론 100% 출력을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가? 아직도 갈피를 못 잡는 게 느껴졌다. 그건 그렇다 쳐도 저건 누가 봐도 심하게 긴장했잖아. 아, 진짜… 답답하네.

 

 

“야”

“캇쨩…?”

“네 놈의 개성, 그건 손에만 집중하지 않으면 쓰질 못하는 거냐?”

“어…?”

“누가 봐도 그딴 식으로 긴장해선 개성은 무슨, 그냥 기록도 못 내게 생겼다고.”

“긴장을 풀어.”

 

 

멍청한 얼굴의 데쿠를 보니, 답답해졌다. 야, 너 진짜 미래에서 평화의 상징이 되는 거 맞냐?

진짜 답답하네. 내 죽음을 이딴 새끼한테 헌납했다니. 자책해라, 과거의 나.

 

 

“손으로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다른 부위에 집중하고 개성의 출력량을 이라고. 정 못하겠다면 출력 시간을 최대로 줄이던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말라고!! 등신 새끼야.”

 

 

바쿠고는 미도리야에게 할 만큼 말을 하고는 뒤로 물러섰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다음 종목을 준비하기 위해 이동했다. 난 내가 해줄 수 있는 만큼 했다. 저 새끼한테 도움이 됐는지 안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순간이 되었든 간에, 걱정할 시간조차도 아깝다고 생각해 전력으로 임했기 때문에, 데쿠의 사정 따윈 이해할 수 없다. 그건 저 새끼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그거랑 별개로 저 새끼 정말 답답해 죽겠네. 올마이트 안목 이상한 거 같아.

 

 

그렇다고 데쿠 놈이 크게 뭔갈 결과를 바꾼 것은 아니었다. 대신 미도리야는 전과는 다르게 무언가 깨달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컨트롤에 도움이 된 것 같았다. 막상 그러니까 좀 짜증나네.

 

 

바쿠고는 종목별 성적을 보고 오랜만에 움직인 관절들의 근육을 풀었다. 단순한 종목들이었지만 건진 것은 있었다. 신체 능력은 과거보다는 떨어지지만, 개성 컨트롤만큼은 경험이 있다 보니 세심하게 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신체야 금방 훈련하면 극복할 수 있을 터, 컨트롤이 세심해졌다는 점은 무엇보다도 큰 강점이었다. 바쿠고는 신체 능력 향상을 우선순위로 잡았다. 오늘부터 트레이닝이다.

 

 

방과 후, 다른 이들보다 먼저 나왔다. 바쿠고는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트레이닝의 방향과 계획을 구상하는지라, 그 뒤로 미도리야가 따라오는지도 모른 채 집까지 도착했다.

 

 

“캇쨩ㅡ!”

 

 

바쿠고가 집 문을 따로 들어가려는 찰나, 뒤에서 미도리야가 불렀다. 자동으로 문을 따던 손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성인이 되선 자취를 했기에 잊고 있었지만, 바쿠고와 미도리야는 옆집으로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뭔데”

“캇쨩이, …아까 나한테 해줬던 말, 그거 조언 때문에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어….“

“그래서?”

“그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서….”

“니 새끼가 개성 쓰는 게 답답해서 그런 거거든?”

“캇쨩, 혹시…”

“니가 어떤 말 할지는 모르겠는데, 어물쩍하게 굴 거면 말하지 마라.”

 

 

미도리야는 바쿠고의 말에 바쿠고의 눈을 응시했다. 바쿠고는 무언가 알고 있어. 미도리야의 머릿속에는 의문과 혼란, 그리고 비밀을 가져가야 한다는 죄책감이 뒤엉켰다. 바쿠고가 무언가 알고 있다는 건 처음에는 의심뿐이었지만 의심은 점차 확신으로 변하고 있었다. 미도리야가 고민에 빠진 채 서있는 모습을 보던 바쿠고는 혀를 차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에도 미도리야는 바쿠고의 집 앞에서 몇분 간 고민에 빠진 채로 한참을 서 있었다.

 

 

 

 

바쿠고는 기상 시간 보다 더 일찍 눈이 뜨였다. 긴장한 탓이다. 평화의 상징을 다시 마주할 수 있다. 기대감에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졌다. 막상 기대했지만, 오전 수업만큼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오후가 기대되기에 더 지루해졌다. 기대한 만큼, 두려움도 있었다. 다시 마주할 수 있겠느냐는 막연한 두려움. 바쿠고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다시 되새겼다. 이제는 나의 죄책감과 마주해야 했다.

 

 

나는 피하지 않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ㅡ

 

 

“내가 !! 평범하게 문으로 왔다!!!”

“올마이트야!!”

 

 

평화의 상징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온전한 모습으로 오롯이 서 있었다. 그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런 모습을 티를 낼 수 없어, 먹먹한 감정을 억지로 삼켜냈다.

 

 

“히어로 기초학! 히어로의 소질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훈련을 하는 과목이다!!”

 

 

올마이트. 당신을 알고 있을까.

 

 

“갑작스럽지만 오늘은 전투 훈련이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당신이 선택했던 미도리야 보다도.

내가 당신을 간절히 원했음을.

 

 

“지금부터 '빌런 조'와 '히어로 조'로 나뉘어 2대 2의 실내 전을 행한다.”

“기초 훈련도 없이?”

“기초를 알기 위한 실전이다. 상황 설정은 '빌런'이 아지트에 '핵병기'를 숨겨두고 있고, '히어로'는 제한 시간 내에 '빌런'을 붙잡거나 '핵병기'를 회수할 것. '빌런'은 제한 시간까지 '핵병기'를 지키 거나, '히어로'를 붙잡는 것이다. 콤비와 대전 상대는 제비뽑기다!”

 

 

먹먹함을 뒤로하고 정신을 갈무리했다. 잡생각은 나중에 해도 충분했다. 훈련에 집중해야 한다. 나에겐 대충이란 없으니까. 이전과 마찬가지로 'D'팀, 이이다와 같은 팀이 되었다. 그리고 역시나ㅡ

 

 

“A 콤비가 '히어로', D 콤비가 '빌런'이다!!

 

 

상대는 데쿠다. 하,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서야. 데쿠 놈과 눈이 마주쳤다. 동공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 헛웃음만 나왔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유난히 데쿠 놈과 얽히는 건지. 그 당시엔 그냥 분노에 눈이 멀어 상황에 집중하지 못했다. 아니, 상대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얕잡아 본 탓에 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나는 너에게 절대로 질 생각이 없으니까.

 

 

세팅을 위해 이이다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실내 구조의 좁은 복도. 폭발 개성인 자신에게는 일부 불리할 수도 있었다. 핵병기를 지켜야 하니까. 예전에는 데쿠 놈한테 신경이 쏠려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훈련이라곤 해도 빌런이 되는 건 마음이 편치 않은데, 이걸 지키면 되는 거겠지.”

“이봐, 이이다.”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나도 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ㅡ 그리고 그러려면 협동이 필요하겠지.”

 

 

핵병기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히어로가 아니다. 빌런이다. 빌런의 사고로 움직여야 한다. 곰곰이 생각하며, 이이다와 작전을 짰다. 예전의 나라면 협동의 '협'이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겠지. 그러나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지. 나는 이기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

 

 

나는 빌런, 그리고 데쿠 놈은 히어로. 그 무엇이던 간에 나는 너를 이길 거다. 이즈쿠.

 

 

 

 

 

“이거 외워야겠네. 그래도 아이자와 선생님이랑 달라서 벌 같은 건 없는 모양이라 안심이지?

 

 

우라라카는 미도리야와 자신에게 주어진 건축 설계도면을 보면서 말했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어, 슬쩍 미도리야를 돌아보았다. 미도리야는 도면을 든 채로 떨고 있었다.

 

 

“미도리야!? 떨어?!”

“아니, 상대가 상대라서…, 좀 움츠리게 되네.”

“바쿠고 군 때문에 그래? 바쿠고 군이 좀 깔본다고 했던 사람이었지?”

 

 

미도리야는 우라라카의 말에 중학교 생활을 되돌아보았다. 깔본다고 해야 하나. 소꿉친구라고 묶여있지만, 친구라는 대우는 받아본 적이 없었다. 중학교 때는 마냥 싫었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자신보다 대단했다. 말 그대로 싫지만, 대단한 사람.

 

 

“목표도, 자신감도, 체력도 개성도 ㅡ 나 같은 것보다 몇 배나 대단해.”

“미도리야….”

“하지만 나도 지고 싶지 않아.”

 

 

그런데 어째서일까, 근래 분위기가 달라진 느낌은 든 것은. 그 '캇쨩'이 나에게 개성 조언을 해준 이유는? 그 전에 내가 개성이 생겼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미도리야는 자신에게 개성이 양도되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캇쨩은 무언가 알고 있는 느낌이었어.

 

 

애초에 내가 개성이 없다는 사실을 제일 잘 아는 것도 캇쨩이다. 갑자기 개성이 생겼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믿을 사람도 절대 아니다. 자신이 아는 바쿠고 카츠키란 사람은.

 

 

“미도리야? 이제 잠입해야 해.”

“아, 미안. 지금 바로 잠입하자.”

 

 

미도리야는 우라라카의 말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전투 훈련 중이었지. 머릿속에서 캇쨩에 대한 괴리감이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전투 훈련이었다. 전투 훈련 시작이라는 말과 동시에 잠입했다. 미도리야도 설계도면을 유심 깊게 보긴 했지만, 평면과 입체의 괴리감 때문인지 사각지대를 쉽사리 파악하기란 어려웠다. 아직 원포올을 섬세하게 조절하는 것은 어려웠다. 머릿속으로 캇쨩에 대한 분석 노트를 떠올리려고 애썼다.

 

 

“앗!!”

“우라라카 양 괜찮아?!”

 

 

가까스로 피했다. 정면으로 맞았더라면 어떻게 될지 생각만으로도 식은땀이 흘렀다.

 

 

“데쿠ㅡ.”

“캇쨩ㅡ 캇쨩이라면 날 한방 먹이러 올 거라 생각했어.”

 

 

바쿠고는 미도리야를 보고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미도리야는 그 모습에 섬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바쿠고는 미도리야에게 개성을 쓰기 위해 오른손을 들자, 미도리야는 바쿠고에게 달려들어 오른팔을 잡으려했다. 그 순간, 바쿠고는 오른손을 내어주고, 왼손으로 달려든 미도리야에게 폭파를 사용했다. 미도리야는 허리춤에서 느껴지는 화끈거림에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날렸다.

 

 

“악?!”

“어이, 데쿠. 화력은 조절했으니 죽진 않겠지만, 타격이 없진 않지?”

 

 

캇쨩은 처음 공격에는 오른쪽을 크게 휘두르기만 했다. 아니 대체로 맨 처음엔 '오른쪽만' 사용했다. 많이 봐 왔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오른손은 미끼로 왼손을 사용했다.

 

 

“… 캇쨩, 움직임 패턴이 변했구나.”

“날 거머리처럼 따라다니면서 관찰하는 거 알고 있으니까. 내 행동 패턴을 분석했겠지.”

 

 

미도리야는 침이 바짝 말라감을 느꼈다. 흥분한 캇쨩이 아니야.

 

 

평소처럼 흥분한 상태의 바쿠고라면 행동 패턴이 조금 더 단순해져서 조금 더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미도리야의 예상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냉철한 분위기의 바쿠고. 이때의 바쿠고는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할 줄 알았으니까. 위험했다.

 

 

캇쨩이 나를 제대로 보고 있다. 평소와 다르게 무시하는 게 아닌, 정면으로 대등하게.

 

 

“난 널 이긴다.”

“나도 지고 싶지 않아, 캇쨩….”

 

 

또렷이 응시하는 얼굴. 그 얼굴을 보니, 속에서 열이 뻗쳐 왔다. 언제나 그랬다. 데쿠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면, 저 망할 놈의 제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듯한 얼굴로 인해 화가 났다. 

 

 

바쿠고는 속에서 끓어 넘치는 화를 가라앉히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도리야군, 어쩌지!? 핵병기를 찾으려면 여길 지나가야 해.”

 

 

1층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핵병기는 1층이 아닌 곳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아마도 이이다가 지키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 복도 중앙에서 바쿠고가 길을 막고 있는 상황으로 인해, 우라라카와 미도리야는 더 이상의 진입이 어려웠다. 핵병기`를 찾기 위해서는 바쿠고를 제쳐야 했다.

 

 

[이봐, 바쿠고군! 상황을 가르쳐 줘.]

“여긴 이상 없다.”

[알겠다.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겠다.]

“역시 캇쨩, 순순히 길을 비켜주진 않겠지…?”

“당연한 소리를ㅡ!”

 

 

바쿠고는 오른손을 들자 움찔하는 미도리야의 반응을 보고는 오른손을 뒤로 휘두르면서, 폭발로 추진력을 얻어 앞으로 도약했다. 도약하면서 왼발로 미도리야를 걷어찼다. 미도리야는 반사적으로 양팔로 공격을 막아냈지만, 양팔이 얼얼했다.

 

 

“윽, 얼얼해.”

 

 

미도리야가 자신의 공격을 쉽게 막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 지, 움직임에 제한이 없었던 왼손으로 미도리야를 향해 폭발을 일으키며 떨어졌다. 그 순간을 틈타 바쿠고를 피해 도망가려는 우라라카를 향해 폭발을 일으켜 도약했다. 우라라카를 금세 따라잡은 바쿠고는 우라라카를 오른팔을 휘둘러 밀쳐냈다.

 

 

“악!!”

 

 

순식간에 제압된 우라라카가 벽에 부딪히면서 신음했다. 미도리야는 침을 꿀꺽 삼키며 우라라카의 상태를 확인했다. 살짝 긁힌 정도였다. 이 정도면 바쿠고가 많이 봐주고 있었다.

 

 

“불리한 상황이야…”

 

 

미도리야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런 상황까지 예상하진 못했다. 자신의 예상으로는 캇쨩은 자신과 대치하거나, 자신이 나서는 상황에서는 흥분으로 이성을 잃었으니까. 그럴 때의 바쿠고는 어느 정도 행동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예상보다 캇쨩이 너무나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하, 히어로가 되고 싶다면서 여기까지냐? 대단도 하셔라.”

“와 바쿠고, 진짜 빌런 같았어.”

 

 

화면으로 그들의 전투를 보고 있던 키리시마의 말에 올마이트는 멋쩍은 듯 웃었다. 미도리야 소년한테 들은 느낌으론 자존심의 결정체로 화끈하고 잘 발끈하는 것 같긴 한데, 생각보다 이성적이다. 미도리야 소년과 비교하면 전투 센스도 개성 컨트롤 능력도 뛰어나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너무 빌런에 몰두한 것 같군…으음!

 

 

미도리야는 생각했다. 이건 너무 빌런같잖아. 정말 빌런에 이입한 거냐고, 미도리야는 바쿠고에게 혹시 진로가 빌런은 아니냐고 묻고 싶었다. 이건 미도리야만의 생각이 아니었는지 옆에서 움찔하는 우라라카의 반응이 느껴졌다. 미도리야는 우라라카를 한번 바라보고는 바쿠고를 바라보았다. 현재 생각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캇쨩이야말로, 정말 빌런 같아….”

“죽고 싶냐!? 데쿠.”

 

 

미도리야의 일부러 바쿠고를 발끈하도록 유도했다. 미도리야의 말에 바쿠고는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평소와 같이 씩하고 웃고는 천천히 다가왔다. 서로의 거리가 거의 다다랐을 때쯤, 바쿠고는 양손에 폭발을 일으키기만 할 뿐 더 이상 다가가지 않고 우라라카와 미도리야를 견제했다. 생각보다 캇쨩이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바쿠고가 옥내라는 상황이라 대인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을 확신하게 된 미도리야는 바쿠고에게 몸을 숙이며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미도리야의 행동에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내빼자, 미도리야는 바쿠고의 품 안으로 파고들다시피 달려들어 바쿠고의 양 팔목을 붙잡을 수 있었다. 팔목을 붙잡히자 바쿠고는 눈을 찌푸렸다. 미도리야는 악력으로 비틀어 팔목을 빼내려는 바쿠고를 저지하며, 우라라카에게 소리쳤다.

 

 

“우라라카양! 캇쨩을 띄워줘!!”

“응!!”

 

 

우라라카는 개성을 사용해 바쿠고를 띄웠다. 바쿠고의 몸이 떠오르자 미도리야는 바쿠고에게서 손을 떼고 계단을 향해 달렸다. 그 순간 바쿠고는 오른손으로 우라카라를 밀쳐내고는 왼손으로 천장을 향해 작게 폭발을 일으켰다. 천장의 구조물이 일부 무너졌다. 그렇게 몇 번의 폭발로 우라라카의 앞에는 돌벽이 생겨났다. 그 광경에 우라라카는 경악에 찼고, 그 얼굴을 보며 바쿠고는 미소 지었다. 우라라카가 개성으로 돌들을 치우고 2층으로 오르기엔 꽤 시간이 걸릴 터였다.

 

 

“데쿠 놈이 2층으로 갔어.”

[알겠다.]

“곧 간다.”

 

 

바쿠고는 계단을 올랐다. 끝에 다다를 때쯤, 바쿠고는 개성으로 계단을 폭파했다. 혹시나 모를 우라라카의 난입을 제지하기 위해서였다. 미도리야가 도망간 게 신경 쓰이긴 했지만, 우라라카를 저지하는 데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3층에 도착하자, 이이다는 미도리야와 대치하고 있었다. 기동력이 좋은 이이다와 미도리야는 상성이 안 좋았다. 미도리야가 공격하는 즉시 이이다가 회피하고, 그것이 반복되면서 승부는 나지 않고 있었다. 빌런 측은 15분이 지나면 이긴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그렇게 이기고 싶지는 않았다.

 

 

“바쿠고군, 한계야…”

“어이, 데쿠. 조언하나 할까? 여기서 벗어난다고 해도, 핵병기는 쉽게 못 찾아.”

“캇쨩…?”

 

 

미도리야는 2대 1 이라는 구도에 기하며 뒷걸음질 쳤다. 아까 바쿠고로 입은 타격을 몸이 반사적으로 기억해 반응한 탓이었다. 이이다만으로도 어떻게 핵병기를 탈환해야 할 지 고민이었는데, 캇쨩까지 가세라니…….아니, 먼저 핵병기부터 찾아야 하는 거잖아…이거이길 수 있을까? 바쿠고의 말에 미도리야는 절망감에 좌절할 것만 같았다. 그 찰나, 희망 같은 바쿠고의 말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데쿠, 여기서 네가 날 쓰러트리면 핵병기가 있는 곳을 알려주지.”

 

 

캇쨩이 저렇게 말해온다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내가 시간 내에 핵병기를 찾지 못할 것과 캇쨩을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확신을 하고 있는 거지. 우라라카는 어떻게 된 거지? 아래층에서 폭발 소리가 들려온 것으로 봐서는 당했을 가능성 혹은 저지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캇쨩 혼자 올라왔다는 건…, 우라라카는 괜찮을 걸까.

 

 

미도리야는 마른침을 삼켰다. 조금 지쳐보이는 이이다와 흠집 없는 캇쨩. 현재 우라라카의 지원을 받기는 늦은 것 같고…. 사실 시간이 얼마 없는 이 시점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캇쨩은 내가 수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조건을 내건 거다.

 

 

완전히 말려들었다.

 

 

“…할게. 캇쨩.”

 

 

미도리야의 대답에 바쿠고가 활짝 웃었다. 그 어떤 때보다도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꿉친구라는 타이틀을 가졌지만, 그 미소를 미도리야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그 미소에 미도리야 뿐만 아니라, 화면을 보고 있던 모두가 그 미소에 잠시나마 현혹되었다. 그 미소를 바로 앞에서 마주한 미도리야는 정신이 멍해졌다. 그 매혹적인 미소가 악마가 자신을 현혹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것 같아서. 그 악마의 손을 잡으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미도리야는 잡는 쪽을 선택했다.

 

 

미도리야의 승낙에 바쿠고는 창가 기둥을 박차며 미도리야에게로 도약했다. 좁은 구조 탓에 미도리야는 피하기엔 늦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타이밍에 맞춰 반격해야 했다. 바쿠고가 미도리야에게 공격을 가하기 위해 손을 들어 올렸다. 바로 지금!!

 

 

“아!?”

 

 

미도리야가 반격을 하려는 찰나, 바쿠고는 몸을 틀어 공중에 폭파를 가해 궤도를 변경했다. 그리고 궤도를 변경하여 몸이 살짝 들떠 올라, 미도리야의 위로 넘어서는 그 순간 반대쪽으로 한 번 더 폭파를 가했다. 금세 미도리야의 등 뒤로 이동한 바쿠고는 가차 없이 공격을 가했다.

 

 

“컥!!!”

 

 

무방비한 상태에서 유효타를 먹은 미도리야의 오른쪽으로 추가 공격을 가한 바쿠고는 미도리야의 오른팔을 잡고 휘두르듯이 내쳤다. 바쿠고가 내던진 탓에 거리가 벌어지자, 미도리야는 몸을 일으키며 몸을 뒤로 내뺐다. 제대로 유효타를 여러 번 입은 미도리야는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시간이 이제 거의 없다. 미도리야는 마지막 수를 쓰기로 했다.

 

 

“우라라카양!”

“응!!”

“혜성 홈런!”

 

 

사실 우라라카는 돌무더기들을 치우는 데 개성을 쓰면서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미도리야가 사전에 말한 때가 지금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라라카는 기둥을 잡고 개성을 사용해 들어 올리며 휘둘렀다. 기둥이 통채로 뽑혀나가면서 천장이 뚫렸고, 그 잔해가 우르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조금 위험하겠는 걸… 우라라카는 바쿠고와 이이다에게 기둥을 휘둘렀다.

 

 

“홈런이 아니잖아!!?”

“얍!!”

 

 

이이다가 기둥과 잔해들을 피하고자 몸을 움직이려는 찰나, 우라라카는 이이다를 뛰어넘어 제쳤다. 핵병기는 어디 있지?! 뚫린 천장을 올려다보던 우라라카는 5층에 핵병기로 보이는 물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거다!!

 

 

“미도리야군!! 5층이야!!”

“……칫”

“이길 수 있어!!”

 

 

우라라카가 개성을 써 5층으로 떠오르려는 찰나, 바쿠고는 어느새 우라라카의 정면으로 파고들면서 폭파를 가했다. 우라라카는 바쿠고의 공격에 몸이 튕겨 나가면서 기둥에 머리를 부딪치면서 정신을 잃은 듯했다.

 

 

“악!!!”

“우라라카양!!”

 

 

바쿠고는 이이다에게 눈빛으로 신호을 보냈다. 이이다는 바쿠고의 신호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너진 잔해들을 밟고 도약하여 5층으로 도약했다. 미도리야에게는 더는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사람을 향해 쓰고 싶지 않았지만, 더 이상 수가 없었다. 우라라카도 나를 위해 힘내주었는걸…. 개성을 제어하지 못한다고 개성 쓰는데 주춤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시간은 거의 끝나갔다. 캇쨩은 정말 진심이야. 이제는 피하지 말고, 진심으로 해야 해. 이번 공격이 마지막이 되겠지….

 

 

“캇쨩…. 널 이길 거야. 진심으로.”

“하, 해보시던가.”

“선생님!! 이거 위험해 보이는데 말려야 하는거 아닌가요?”

 

 

미도리야가 오른팔에 개성을 집중하는 것을 본 바쿠고는 알았다. 진심으로 온다. 바쿠고는 양팔에 장착한 토시의 무게가 꽤 묵직해진 것을 느꼈다. 네가 진심으로 온다면, 나도 진심으로 가야겠지. 바쿠고 또한 오른팔에 개성을 집중했다.

그들의 모습에 올마이트는 고민했다. 과연 여기서 강제로 멈추는 게 맞는 걸까. 이미 건물이 폭파 상태로 봐서는 진즉 이전에 멈춰야 했다. 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대처할까 하는 호기심과 열정에 홀린 듯이 보게 되어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미루다가, 결국 여기까지 왔다.

 

 

미도리야가 오른팔을 휘두르자, 그에 맞춰 바쿠고 또한 오른팔을 휘둘렀다.

두 사람의 주먹이 맞닿으면서 두 사람의 개성이 격돌했다.

 

 

그 충격으로 3층과 4층 주변이 폭파했고, 이이다가 있던 5층까지 충격이 전해졌다. 이이다는 핵병기에 충격이 전해지지 않도록 움직여가며 아래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잔해들이 휘날리며 두 사람의 인영이 흐릿하여 보이지 않았다. 이이다는 아래층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괜찮은 건가?!”

 

 

잔해가 천천히 걷히며 우라라카의 형체부터 보였다. 다행인지 그녀는 바쿠고의 공격에 멀리 튕겨나갔기 때문에 두 사람의 개성에 휘말리지 않았다. 그 모습에 이이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미도리야는 개성의 최대치를 사용한 탓에 온몸에 찰과상이 가득했다. 오른팔은 개성을 사용으로 망가진 듯 감각이 느껴지지 않아 축 늘어져 있었다. 아, 정말 한계야…. 그래도 지는 건 싫어. 할 수만 있다면 계속해서 달려들고 싶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누적된 공격으로 인하여 몸을 지탱하는 것조차도 힘들어 한쪽 무릎으로 받쳤다. 미도리야에 비하면 바쿠고 상태는 양호해 보였다. 그들의 격돌을 화면으로 지켜보던 이들은 숨을 죽이며 지켜봤다.

 

 

바쿠고가 미도리야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미도리야는 다가오는 바쿠고를 보면서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기고 싶었는데 졌다. 그래서 …분했다.

 

 

바쿠고도 미도리야의 공격에 찰과상이 가득했다. 그리고 공격 또한 충격이 없지 않았다. 오른팔이 맛이 간 것 같았다. 진심이었잖아, 이 녀석. 얼굴로 잔해가 튀면서 제대로 긁혔는지 화끈함이 느껴졌다. 아, 귀찮게… 바쿠고는 손으로 대충 피를 닦아내고는 미도리야의 앞에서 멈춰 섰다. 바쿠고는 미도리야를 내려다보았다. 판단하건대 미도리야는 더 이상 공격이 불가능해 보였다. 오른팔은 망가진 듯 푸른색으로 변한 채로 늘어져 있었고, 몸은 지탱하기 어려운지 무릎으로 간신히 중심을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미도리야의 시선이 자신과 마주쳤다. 미도리야의 몸은 한계일 것이 분명한데도 눈은 죽지 않고 타오를 듯이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눈빛에 바쿠고는 멈칫했다.

 

 

그래, 넌 언제나 그랬지.

 

 

바쿠고는 미도리야를 향해 손을 올렸다. 그 모습에 이이다는 물론, 화면으로 그들을 지켜보던 이들도 숨을 죽였다. 바쿠고는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미도리야의 이마에 힘껏 딱밤을 놓았다.

 

 

“…윽! 캇쨩?!”

“바보냐, 네 녀석…. 빌런의 조건에 수락하는 히어로가 어디 있냐.”

[빌런팀 시간 초과로 WIN !!!!]

 

 

빌런 측의 승리로 전투 훈련이 마무리되고, 올마이트가 건물로 들어서자, 처참하게 부서진 건물의 잔해들이 널려있었다. 정말 제대로 무너트렸구나. 올마이트는 헛웃음을 지었다.

 

 

곧이어 올마이트의 지시 하에 반송용 로봇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신을 잃은 우라라카와 상태가 최악으로 보이는 미도리야를 보건실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올마이트는 이이다와 바쿠고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이다는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고, 바쿠고의 상태도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찰과상은 물론, 마지막에 미도리야와 격돌하면서 그 충격과 반동을 받았다. 아닌 척하지만, 오른손 끝이 떨리고 있었다.

 

 

“바쿠고 소년, 보건실로 가보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바쿠고는 올마이트의 말에 따라 보건실로 이동했다. 바쿠고는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아까의 충격으로 인해 손끝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사실 미도리야와의 내기는 원래의 계획에는 없었다.

 

 

자신의 즉흥적인 행동이었다. 그… 망할 데쿠놈의 얼굴을 보니 다시 생각나 버렸다. 갑자기 과거로 덩그러니 돌아와 버린 자신이. 내가 어떻게 버텼는데, 어떻게 올라섰는데, 그 모든 순간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내가 너 때문에 다시 이렇게 돌아왔다고. 그러니까 한 대만 맞자.

 

 

그래서 미도리야라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내기를 했다.

사실 확인하고 싶었다. 네가 희생할 가치가 있었는지, 나의 판단이 과연 옳았던 것인지.

 

 

바쿠고는 미도리야와 시선이 마주칠 때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의 의지를 이어갈 수 있는 이는 애초에 다른 누구도 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온몸의 긴장감이 풀렸었다. 안도와 희열을 느꼈다.

 

 

다행이다. 너를 위해 희생한 내가 틀리지 않아서.

 

 

그래서 억울함에 딱밤을 날렸다. 너를 위해 희생한 대가로 치르면 싼 거라고.

한 대 치려다가, 온 몸이 작살이 난 게 불쌍해서, 딱밤으로 봐준 거다. …망할 데쿠.

 

 

바쿠고가 보건실을 문을 열고 들어서자 리커버리 걸이 맞이했다. 리커버리 걸의 한숨과 올마이트를 탓하는 소리를 얼핏 들은 것 같았다. 리커버리 걸에게 치료를 받으니 피로감이 느껴졌다. 보건실 한구석에는 미도리야가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다. 우라라카는 없는 것을 보니, 금방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돌아간 것 같았다.

 

 

“저 새ㄲ…, 아니 저놈 상태 많이 안 좋아요?”

“어제오늘 연달아서 왔어. 무식하게 몸을 굴려, 한 번에 치료가 안돼서 애먹고 있다.”

“…….”

 

 

바쿠고는 미도리야를 내려다보았다. 무식하게 개성을 쓰니까 그렇지. 컨트롤도 못하면서. 그런 바보스러운 게 역시 데쿠답다고 느꼈다. 바쿠고는 문득 수업에 늦은 게 생각났다. 아, 수업 가야지. 저 새끼 때문에 늦었네. 바쿠고는 재빨리 교실로 돌아갔다. 이미 한 번씩 다 들었지만, 히어로라면 빼먹지 말아야지. 바쿠고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야! 바쿠고 왔다!!”

“개성 컨트롤 잘하더라!”

“첫 전투를 보고 불타올랐다고!”

 

 

아… 시끄러워. 갑자기 자기들끼리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하지 마. 나 너희 알아. 적당히 맞받아쳐주다 피곤해져서 자리에 앉았다. 수업 시작할 때가 됐는데, 쟤네 왜 저렇게 시끄러운 건데.

 

 

“야, 곧 수업 시작한다고.”

“바쿠고는 생긴 게 빌런 같은데, 의의로 잘 지키는 타입?”

“아, 그런 거 같지.”

“그리고 아까 전투에서도 그렇고….”

“맞아, 정말 빌런 같았어.”

 

 

뭐, 이 새끼야?

 

 

 

 


 

 

 

 

 

 

“아이자와 선생님한테 혼나겠다.”

 

 

미도리야는 시무룩한 얼굴로 침상에서 일어나 리커버리 걸에게 인사를 하고는 교실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전투 훈련밖에 못 했네. 나 잘할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가니 교실 앞이었다. 빨리 짐 싸서 가야겠다 싶어 문을 열고 들어서니,

 

 

“미도리야! 수고했어!”

“마지막에는 진짜 대단했다고!”

“데쿠 군! 상처는 괜찮아? 내가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미안….”

“아니! 우라라카양은 잘해줬어. 내가 더 미안한 걸.”

 

 

미도리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있는데, 한 사람만 없었다.

 

 

“우라라카양, 그보다 혹시… 캇쨩 못 봤어?”

“캇쨩? 바쿠고 군이라면 다들 말렸는데, 아까 별말 없이 가버렸어.”

 

 

미도리야는 우라라카의 말에 바로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왔다. 수업이 끝난 지는 별로 되지 않았으니 멀리는 못 갔을거야. 미도리야는 숨이 차오르는 데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렇게 달리고 멀지 않아, 바쿠고의 뒷모습이 보였다. 미도리야는 바쿠고를 향해 소리쳤다.

 

 

“캇쨩!!!”

“뭐”

 

 

미도리야의 부름에 바쿠고는 고개를 살짝 돌려 미도리야를 보았다. 막상 바쿠고를 멈춰 세운 미도리야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바쿠고는 그런 모습이 답답했다.

 

 

“사람을 불렀으면 말을 해. 벙어리냐?”

“…캇쨩은 내가 개성이 없는 걸 알고 있었잖아…”

“……

“내가 아는 캇쨩이라면 내가 개성이 생겼다는 걸 믿지 않을 거라고, 무시할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개성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런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바쿠고는 미도리야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미도리야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섰다. 미도리야의 말에 바쿠고는 그제야 깨달았다. 바쿠고와 미도리야 사이에는 풀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어느 순간 어물쩍 넘어갔지만, 확실하게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이 했다.

 

 

“야, 내가 먼저 물어보자.”

“…어?”

“사과 받고 싶냐?”

“뭐?”

“너 괴롭혔던 거. 이거부터 정리해야 할 것 같은데.”

 

 

미도리야는 바쿠고의 말에 생각지도 못했는지 입을 벌리고 멍하니 바쿠고를 바라보았다. 미도리야는 자신이 잘못들은 줄 알았다. 내가 무슨 소리를 들었지? 캇쨩의 모습을 한 빌런인가? 사실은 다른 사람인 거 아니야?! 미도리야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자, 바쿠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 진짜 이 새끼랑 안 맞아. 사람 앞에 두고 딴 생각하네.

 

 

“야”

“어어?! 캇쨩? 뭐라고?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어. 괴롭혔던 거 미안하다.”

“……당신,…캇쨩 아니지…?”

“…진짜 죽고 싶냐?”

“아, 아니. 캇쨩이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해버려서…. 사과 받을게.”

 

 

미도리야는 바쿠고를 응시했다. 분노하지 않는, 무시하지 않는 바쿠고. 그리고 자신에게 사과한 바쿠고. 이상한 일투성이라고 생각했다.

 

 

“캇쨩, 나도 말할 게 있어. 속이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내 개성 다른 사람한테 받은 개성이야.”

“그래서?“

“만화 같겠지만…. 정말 사실이야. 누구인지는 절대로 말 못 해. 아직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지만… 언젠가 제대로 내 것으로 만들 거야. 그리고 나 스스로의 힘으로 널 넘어 설거야.

 

 

미도리야의 올곧은 눈이 바쿠고의 에게 향했다. 저 눈 본 적이 있다. 어떤 장애물과 마주쳐도 꺾이지 않는 곧은 눈동자. 그 속에 가득찬 열기가 미도리야에게서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하, 어디 한번 해보든지. 니가 날 넘어선다면, 난 더 그 위로 올라간다.”

 

 

어느새 올마이트가 다가오고 있었다. 미도리야의 뒤로 올마이트가 걸어오는 그 모습이 마치 평화의 상징을 투영하는 것 같아서, 더는 미도리야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멍하게 있는 사이 올마이트가 다가와 바쿠고를 껴안았다.

 

 

“바쿠고 소년!!!!”

“앗!! 올마이트다.”

“바쿠고 소년, 오늘 전투 잘 봤다. 너는 틀림없이 프로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

“…올마이트, 놔줘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올마이트는 바쿠고의 목소리에서 떨림을 느꼈다. 당황한 나머지 올마이트는 바쿠로를 놔줬다. 바쿠고의 눈가가 발갛게 물들어있었다. 올마이트와 미도리야가 바쿠고를 보고는 당황했는지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바쿠고가 눈가를 비볐다. 아, 진짜. 미치겠네. 운거 아닌데. 눈에 뭐 들어갔다고.

 

 

 

 

 

 

 

 

아, 피곤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나옴과 동시에 피로가 몰려왔다. 바쿠고는 침대에 쓰러지듯 엎어졌다. 그래, 응당 해야 했을 것이었다. 지금까지 잘못을 회피하고, 피해왔던 것뿐. 오히려 한 번에 훌훌 털어버린 데쿠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인정하긴 싫지만, 나라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바쿠고는 밀려드는 생각들을 고개를 털어버림으로써 잡생각을 몰아냈다. 노곤함이 몰려와 눈꺼풀이 무겁게 느껴졌다. 곧 바쿠고는 졸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일찍 자야지. 규칙적인 생활은 히어로에게 필수니까. 바쿠고는 이불 안으로 파고들자 눈이 감겼다.

 

 

…타오르는 건물, 그리고 코를 찌르는 매캐한 연기. 주변에는 건물들의 잔해로 가득했다. 그 잔해들 사이로 사람들이 살려달라며 비명을 질렀다. 일반인은 물론, 히어로까지 피해가 넘쳐났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나와 미도리야는 그 현장의 중심에 가까스로 서 있었다. 미도리야가 나를 노려보며 울부짖었다.

“어째서 막지 못 한 거야, 왜!!”

 

 

“…악!!!!”

 

 

찢어지는 비명이 집 안이 울렸다. 한밤중에 울린 비명에 미츠키와 마사루는 놀라 잠에서 깼다. 비명이 들려온 바쿠고의 방으로 향해 달렸다.

 

 

“카츠키!!”

 

 

황급히 문을 열고 놀라 바쿠고를 부른 미츠키는 놀라 주저앉았다.

 

 

“…컥!!”

 

 

바쿠고는 초점 없는 눈을 한 채로 두 손으로 목을 쥔 채 몸을 비틀고 있었다. 마치 호흡이 곤란한 사람 같았다. 상태가 심각해 보이자, 정신을 차린 마사루가 바쿠고에게 달려가 바쿠고의 손을 풀고 몸을 흔들었다.

 

 

“카츠키!! 괜찮니?!”

 

 

마사루가 바쿠고를 흔들자, 곧이어 바쿠고의 두 눈에 초점이 돌아오면서 마른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미츠키는 바쿠고 다가와 떨리는 몸을 안았다. 바쿠고가 상황 파악하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떨리는 몸이 점차 안정을 되찾자, 바쿠고는 미츠키를 슬쩍 밀어내며 말했다.

 

 

“…별거 아니야.”

“방금, 네가 숨을 못 쉬고 있었는데 그래서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악, 몽을 꿔서….”

“이런 적이 없었잖아,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별거 아니라니까.”

 

 

당장 병원에 가야 한다는 미츠키와 마사루를 진정시키고 방으로 내보내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바쿠고는 문을 닫자마자 한숨을 쉬고는 문에 기댄 채로 주저앉았다. 미도리야의 원망 섞인 목소리가, 그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저 악몽이었다. 성인이었던 자신에게는 익숙했으나, 아직은 어린 바쿠고의 정신으로는 견디기 힘든.

 

 

악몽은 자주 찾아왔었다. 언제나 자신의 목을 죄어왔고 숨이 막혀오는 고통에 잠에서 깨곤 했다. 바쿠고는 손으로 목을 어루만졌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갑갑한 느낌에,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목을 긁었다.

 

 

 

 

 


 

 

 

 

“올마이트의 수업은 어떤 느낌인가요?”

“평화의 상징이 교단에 선다고 하는데, 모습이나 소감을 알려줄 수 있나요?”

바쿠고는 결국 잠을 설쳤지만 등교하는 데 무리는 없었다. 다만 좋은 상태는 아니었기에, 평소보다 주위의 소리가 더 예민하게 느껴졌다.

“어라!? '진흙' 사건 때의 소년! 혹시 올마…”

“아앙? 죽,고…”

“하하, 죄송합니다. 보건실에 가야 해서….”

 

 

바쿠고를 알아보고 인터뷰를 시도하려고 다가가는 기자를 본 미도리야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지금 바쿠고의 상태는 폭파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태가 지금까지 봐왔던 중 최악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인터뷰는 막아야한다. 이거 생방송이라고…, 캇쨩…!!

 

 

갑자기 끼어든 미도리야로 인해 바쿠고의 시선이 미도리야를 향했다. 미도리야는 바쿠고의 시선을 애써 회피하며 바쿠고의 손목을 붙잡고 배리어로 달렸다. 얼떨결에 미도리야를 따라 달리게 된 바쿠고는 배리어를 지나치자마자 미도리야의 손을 뿌리쳤다.

 

 

“야”

“아… 캇쨩.”

“아침부터 죽고 싶지?”

 

 

바쿠고는 미도리야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는 환한 미소에 살짝 넘어갈뻔 했던 미도리야는 곧 깨달았다. 캇쨩, 눈에 초점이 없어!!

 

 

바쿠고는 미도리야의 등을 퍽퍽 때리고 손을 가볍게 털었다.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았다. 뒤로 울상인 미도리야를 애써 무시했다. 미도리야를 끌고 교실로 가면서, 바쿠고는 배리어를 향해 달릴 때 무언가 다른 시선을 느꼈었다. 기자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과는 다른 시선. …뭐였을까.

 

 

바쿠고는 사실 과거로 돌아왔음을 인지했을 때,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과거의 일들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흐릿한 흔적으로만 머릿속에 존재했다. 히어로 활동을 하면서 무뎌졌던 것인지, 스스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바쿠고는 과거의 일들을 세세하게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크게 상심했지만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그래, 히어로 활동만 몇 년인데… 언제 그걸 다 기억하고 있어.

 

 

“학급 반장을 정해야 한다.”

“저요!”

“반장!! 하고 싶습니다!! 저!!”

“나도 할래!!”

 

 

하… 아니, 왜 이런 쓸데없는 것만 기억나네! 바쿠고는 속으로 절망했다. 반장 따위, 중요하냐. 주위를 보니 전부 손을 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히어로과라는 특성상 반장이라는 역할의 장점은 무시할 수 없지. 역시… 손은 들어볼까. 바쿠고는 손을 들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안 들었다. '반장의 장점는 무시할 수 없지만, 저런 일에 쓸데없이 낭비할 수 없지'라며 애써 자신에게 되새겼다. 안되면 쪽팔리잖아.

 

 

“반장은 투표로 정해야만 하는 의안!!!”

“그런 거 다 자기한테 하는 거 아니야?”

“시간 내에 정해지면 뭐든 좋으니까 알아서 해라.”

 

 

각자의 앞에 종이가 주워졌다. 바쿠고는 종이를 내려다보며 펜을 굴렸다. 옛날엔 나한테 투표했던 거 같은데. 이번엔 다른 사람한테 해볼까. 누가 좋을까 고민하다 결국 정했다. 바쿠고는 펜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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